비가 필요했다고하죠. 반가운 봄비...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고 있는 과업들은 계속해서 무거워지고 저를 짓누르네요.
일주일에 단 하루는 한정 없이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갑니다.
늘 오후에 1개, 2개, 3개, 4개씩 있는 상담 때문에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이동을 해야되거든요.
주간 일정에 빨랫줄처럼 질펀히 상담시간표가 있어서 괴로울 때가 있어요.
한정 없이 공부를 하고싶은데,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당연한 길이요.
평소에는 즐거워도 하고, 의욕에 여러 문헌들도 살피며 내담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상담자-내담자의 관계가 너무나도 폭력적이라 견디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나라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도 상담을 받는 길이 많이 생겼죠.
그만큼 보호자, 내담자의 책임의 무게도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례들을 보면요.
상담의 초기, 중기, 말기를 온전히 계획대로 끌어갈 수는 없지만
단계에 맞는 활동 정도는 나누어서 마음먹고 진행을 하지요. 내담자 중심이라고 하더라도요. 피드백으로서 다시 초기로 돌아가는 듯 주춤할 때도 가끔 있지만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종결이 통보가 되고, 내담자도 보호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내담자 아이들과는 적어도 종결 3~4주 전 부터 종결을 예고하고 이별을 준비해야하는데 이런 과정이 타의든 자의든 생략됩니다.
초기에 상담을 구조화하며 여러가지 규칙들을 말하지만 이번에 2~3명 중도 탈락된 아이들은 중간에 연계를 받은 경우라
이부분을 제가 소홀히 했을 수도 있겠어요.
상담에 가기 싫어지는 그 자체도 어쩌면 다루어야 하는 감정인데,
보호자 또는 내담자는 일상에서 어떤 일들을 중단, 철회하던 그 방식대로 '무'책임하게 서둘러 황급히 떠나버립니다.
어떤 보호자는 2달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
아이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그쵸? 라고 되물으시고는 그날 상담을 종결하셨어요.
사실 이사를 준비해서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아이가 서운한 표정으로 '택시 타고 여기 혼자 올 수 있어!'라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상담과 공부를 병행하며
상담이 싫어져 넋두리를 하려고 들어왔다가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보니
상담이 싫은게 아니라 좋아서 괴로워하고 있네요.
앞으로 내 인생에 놓여진 무수히 많은 만남과 이별. 이제 그걸 좀 알게된거죠.
마음이 질척질척거립니다.
차라리 아이들이 떠나서 저의 급여에 차질이 생긴걸로 인한 짜증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마치 연인을 그리며 기껏 선물을 골랐는데, 어느날 연인이 떠나버린 그런 마음이 드네요.
제가 상담 슈퍼비전(지도)를 받아야할 때가 온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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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
길목에서 보는 꽃과 나무들과 가볍고 포근한 공기가 스트레스를 좀 날려주곤 했는데
아무리 반가운 비지만
저는 땅이 마른 쨍한 봄의 해가 비추는
꽃과 나무들이 보고싶습니다.
한정이 있든, 없든
저는 학교에서 내려가는 길이 좋네요.
그 순간들, 비맞아가면서 함께한 꽃과 나무들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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